과거, 이유 없는 싫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억울함과 동시에 화가 났다. 하나하나 따지기에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닫고서 금방 누그러지긴 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색해진 몇 명의 친구가 있다. 지난 얼굴들이 스쳐간다. 굳힌 상처를 왜 다시 떼는 거냐고, 되물어본다.
평소 잘 지내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을 때, 딱히 이유랄 것도 없었다. 한순간에 불편해졌고 그 친구가 낯설다고 느꼈졌다. 인사는 커녕 다른 친구와 있는 시간이 늘었다. 상대방도 느꼈던 것 같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갔다. 보일 때마다 말을 걸어보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서툰 감정에 발목이 잡힌 듯싶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만 하다가 졸업했다.
이러한 순간들이 차근차근 쌓이게 되면서,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중학생 때는 초등학생 때의 경험이, 고등학생 때에는 중학생 때의 기억이, 이 모든 액기스들은 아직까지도 나를 흔들어 놓는다. 학창 시절은 친구들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좋은 추억도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 좋았던 추억이 선명해진다. 즐거웠던 기억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그 기억마저 앞장서서 막는 건 좋지 않은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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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등학생 때는 납득 가지 않는 왕따를 당했다. 하교 후, 정문 앞에서 반 친구들이 나를 몰아세웠었다. 무리에 사람이 늘어갈 때마다 억울함과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함에 눈물이 났다. 아무도 내 말을 듣지도, 믿지도 않았다. 거짓말 하나 하지 않았는데, 친구들은 믿고 싶은 사람들 말만 믿었다. 울며 호소해도 듣는 이 하나 없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묵과 회피뿐이었다.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탄 남자아이는 주위를 맴돌며 욕설을 내뱉고, 몇은 돌을 던졌다. 내가 그럴 만한 일을 했던가? 전혀. 그들은 괴롭히고 싶은 대상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조롱 가득한 어투와 동시에 우월감도 느꼈다. 오르막길이 시작하자 애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오락이 끝난 것이다. 옆에는 손에 들린 간식을 쳐다보는 떠돌이 강아지만 남아있었다. 나는 강아지한테나마 위로를 받고 싶었다. 손에 들린 간식을 던지니, 그대로 달아날 뿐이었다.
2
중학생 때는 주변 말에 잘 휩쓸렸다. 밉보이지 않기 위해 눈치도 많이 봤다. 부정적 어투로 시작하는 말이 나오면, 그늘 속에 쪼그려 앉아 대상이 나로 변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당시 할 수 있는 거라곤 새로운 친구들이 다가올 때 차별 없이 대하려고 애썼다는 것. 어렸을 적 기억에 작은 약속을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H 친구는 일 학년 때 미국에서 전학을 왔다. 꽤 가깝게 지냈었는데 남들 말에 휩쓸리지 않고, 루머가 생겨도 맘대로 생각하라지,였다. 곁에서 몇 달 동안 지내고 보니 친구의 사고방식도 내게 스며들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거리를 둔 친구도 떠오른다. 이유가 있다고 해도 설명하지 못해 쉽게 말 걸지 못했다. 그때도 회피를 선택했다. 머리로서는 알고 있지만, 실천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분명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왜 서먹해진 거지’ H처럼 말이라도 잘했으면, 계속 인사하는 사이로 남았을까?
3
고등학생이 되고, 환경도 변했다.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된 사람들과 무리생활을 하자니, 그간 배웠던 소통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눈치 보던 나를 벗어나고자 의견도 피력했다. 나쁜 의미가 없다면 통할 줄 알았다. 소히 자신을 일진이라고 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통의 친구를 꾸려가는 건 쉽지 않았다. 실상 모든 것들이 어리숙했기에 몇 번이나 다짐했다. 이제는 돌을 맞는 내가 아니니 정당한 이유를 말하려 했다.
새로운 친구들은 먼저 다가오다가도 쉽게 멀어졌다. 새로운 인사는 지쳐갔다. 아무리 혼자 아등바등해도 제자리걸음이라고 느껴져 힘들 뿐이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게 나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음악 듣고 있다는 핑계가 나았다. 가끔 어깨 뒤로 들리는 말에도 끼지 않았다. 그들에게 휩쓸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쉽게 사람을 판단했다. 개개인을 자신의 시선으로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재간했다.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도 많이 보고,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물음표가 날 장악했던 것 같다.
4
그렇게 스무 살이 됐고,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 둘러쌓여진 무리들 속 이기적인 모습을 보며 대인기피증도 생겼다. 동창 애들은 만나면 겉으로는 반갑다고 인사를 하지만, 떨리는 손을 붙잡고 뒷짐을 졌다.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겠거니,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고 즐겨보기로 한 것이다. 들려오는 불행 배틀에 지쳐 밤 길이 어둑해도 이해하기로 했다. 길거리에서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귀에 꽂힌 이어폰에 감사했다. 애써 모른 척, 못 들은 척했다. 긴장은 극도로 올라간 상태였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붙잡으며 그들이 부르는 이름을 무시했다.
다른 환경에 처해질 때마다 사람들은 극적으로 변했던 것 같다. 시작이 어려운 나는 하나하나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라 포용을 접기로 했다. 그릇이 작은 탓이지.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내 모습에 질리기도 했지만, 이타적인 사람을 겪을 때마다 죄책감도 동시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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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상태를 증오했다.“그냥 ... 싫어서?” 하는 무신경을 혐오했다. 자신이 무엇이라도 되는 듯, 사람을 몰아세우는 말들을 혐오했다. 어떤 사람은 잊지 못하고, 가슴속에 어둑히 쌓여있을 터. 난 아직도 이 기억을 품고 있다. 그러니 "그냥?" 이라고 말하는 투박함이 싫었다. 항상 이유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이유도 싫어하는 이유도…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성인이 되도 비슷한 상황은 자꾸 나타났다. 아무래도 신경쓰는 부분이라 더 크게 느껴지곤 한다. 무시하면 할 수록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겠다. 차차이 부정적 에너지가 쌓여갔다. 마음과 다르게 많아진 흑역사에 한숨을 쉴 때쯤, 옆에 친구가 말한다.
...
"경지야, 난 그냥 네가 멋있어"
"그냥이 뭐야~ 뭐가? 어떤 부분이~?"
"일일이 설명 못하겠는데,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