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EBS본사 1층 이디야커피에 앉아 있습니다. 들어오는 순간 커다란 펭수 캐릭터가 저를 반기고,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위대한 수업>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어요. 겉에서 볼 때는 그냥 커다랗고 네모난, 딱딱한 분위기의 건물이었는데 안에는 초록도 많이 보이고 공간도 요상하게 구성되어 있는, 왠지 스타트업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아 제가 왜 여기에 있냐면요. 조금 있다 30분 뒤에 면접을 보기 때문인데요. EBS에서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계약직을 구하고 있길래, 얼떨결에 자소서를 떴는데 합격했길래 일산까지 날라왔지 뭐예요. 헤드헌팅 업체라길래 면접 준비나 자소서 첨삭이라도 좀 제대로 해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그냥 나 혼자 다 한 것 같애. 그래도 일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준 게 어디에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자소서는 많이 써보기는 해서 끼워맞추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유튜브도 해봤고, 창업도 콘텐츠 쪽으로 했고, 정부 지원 사업도 많이 써서 서류도 잘 쓴다고. 이제까지 했던 일들은 모두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함이었다고 쓰는데 어째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다정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이 ‘그래 이정도 노력하는데’ 하면서 믿어주는 것처럼 면접에서도 마찬가지 일거예요. ‘그래 적당히 구라인 건 알겠어 근데 노력이 가상하긴 하네’ 하는 식으로요. 아무튼 면접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게 있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많다’는 거였습니다. 계약직 면접 후기가 없어서 방송사 공채 후기들밖에 볼 수가 없었는데요. 무려 5차 면접까지 이어지는 그 공채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글을 보자니, 자기소개서에 인적성에 실기 시험으로는 프로그램 기획안을 내야 하고, 면접도 두 번이나 본다고요. ‘어렵게 들어갔으니 잘 나오지는 못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 번 ‘취업은 연애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여기까지 쓰고 면접을 다녀 왔어요. 에이전트 분께서 오셔서 면접에 도움 될 만한 얘기를 몇 개 해주시고. 2시부터 면접인데 저는 마지막 순서였어요.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가 쓸쓸히 퇴장했네요. 서로 면접 잘 보라고 덕담하던 건 다 잊고, 면접 끝나니까 쌩 하고 가버리시더라고요. 제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는 거 보고 웃으신 서초역 사는 31세 누구누구님. 이 날의 치욕은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아무튼 준비했던 1분 자기소개나 성격의 장단점, 존경하는 인물, 하나도 안 시키셔서 ‘해보겠습니다’하고 열심히 말하고 나왔어요. 다시 한 번 연애와 비교하자면, 서류와 첫인상에서 이 사람을 뽑을 지 말 지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 뒤에는 그냥, ‘그래 너 이미 뽑혔는데 무슨 말 하는 지 한 번 들어보자’ 라거나 ‘그래 너 안 뽑을건데 그래도 왔으니까 너 하고싶은 말 해봐라’ 하는 식이죠. 여기서 ‘진심’이나 ‘능숙함’이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요. 뽑아주는 사람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건물 앞을 터덜터덜 걷다 보니 쓰다 만 뉴스레터가 생각나서요. 집에 안 가고 근처 카페로 들어왔습니다. 절 기다려주는 건 독자 여러분들밖에 없네요. 고맙습니다. 많이 부족한 나를 사랑한 그대 (?). 그래요. 저는 언제나 진심이예요. 여러분들에게도, 인터뷰이에게도 에디터에게도 전부요. 오늘 EBS 면접에서도 마지막 질문 빼고는 다 진심으로 대답했어요. “취업하셔도 하시던 일은 계속 하셔야겠네요?” “아니요. 당장 그만둘겁니다.”
감사합니다. 정태홍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