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갔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가끔은 모든 걸 똑같이 취급할 수 있다. 그렇게 지나가는 아무개가 될 뿐인데, 나는 결국 그들과 똑같아지려고 아등바등 거리를 두고 팔짱을 꼈던가? 내가 뭐 되나?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 실수는 누구나 하는데. 실수를 하고 나서야 쌓인 이불을 들쳐본다. 사방팔방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감쌌던 어둠에 질 순 없으니 빼꼼 얼굴을 내민다.
냉정하게 말해서, 온기가 필요했다. 남들이 말하는 보살핌. 남이 주는 '나'라는 존재의 각인을 원했다. 하루아침에 만난 사람들에게 그런 게 있을 리 난무하다. 그럼에도 계속 같은 길을 가는 이유는 책임감에 어깨가 짓눌리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약간의 죄책감 때문이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해도 항상 엎어진다. 헤엄도 못 치면서 풍덩! 빠져버린다. 괜히 손가락을 만져봤다. 뭐든 상관없었다. 실존한다는 이유로 충분했다. 눈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괜히 하는 말은 괜히 할 수 있다. 지난 시간은 가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다치고, 실수한 것에 대한 수치심은 이제까지 다양하게 받아왔으니, 더 이상 추가된다고 내 삶이 부끄럽게 되는 건 아니다. 난 아직 젊다. 그러니 더 많은 상처를 받아도 된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련과 마주했다는 것에 기뻤을지도 모른다. 또 불어오는 바람에 금방 차가워지는 손과 발을.. 무감각에서 피가 돌아가는 걸 느낄 수 있게 하는 과정까지.. 타인이 조심스레 잡아주는 작은 압력이 좋았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무엇을 할 때 열심히 하다 보면 잘 풀릴 것만 같다.는 자기위로적 태도로 살아간다. 그건 아직도 유효하다. 좋아하는 일이 경제적인 부를 이끌지 못할지언정,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나를 꺼내 내보이며 삶을 살아간다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주어진 인생을 즐겁게 살 자격을 받았다는 증거. 나는 그 증거를 높이 사는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고민이 되는 건, 현실이라는 냉정한 공기 때문에 점점 더 말이 줄어든다는 것. 얼굴에 표정을 잃었다. 내가 이토록 미지근한 사람이었나. 이토록 작은 행동에 따뜻한 행복을 느꼈던가. 아무런 감정 없는 … 그러니까 상대방의 입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던, 그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이토록 외로운 사람이었나..
연애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 그럴까. 아니면 지난 사랑을 못 잊었기 때문에 그럴까. 아님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날 것 같아서? 세상엔 백마 탄 왕자는 없다. 알면서도 제자리걸음만 몇 년째. 나이가 들어감에 발전이 아닌 반성만이 쌓인다. 번복된 실수의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아 짙어진 팔자주름을 보면 속상하다. 거울을 보면 볼수록 인정하게 된다. 두꺼워진 가면의 개수를 조용히 받아들인다.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 걸까. 단순하다면 단순한 게 감정 아닐까. 눈물이 나면 울고, 웃음이 나면 기뻐하며, 화가 나면 짜증을 내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대면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인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다가오는 이 감정을 부정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지난 과오들의 업보일까. 이 선택이 돌고 돌아 나비효과로 정착할까 봐 앞선 걱정에 그런 걸까.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위해 달려왔던 한 달, 일 년…들이 무색할 정도로 항상 다친다. 그게 청춘이란다. 어리기에 가능하단다. 그러니 더 넘어지고 싶기도 했다. 장르 불문. 따지고 보면 ‘이야기로 만들면 누구든 주인공 아닐까?’ 항상 생각해왔다.
책을 냈던 이유도 그중 하나다. 주변인들, 그러니까 한 명의 엑스트라가 이야기 속 주인이 된다면 지나가는 타인도 괜히 달라 보인단다. 오해를 오해하기로 했단다. 웃기지 않나. 본인들 스스로 인정하고 말고 없는데, 막상 본인들은 ‘나처럼’살아가는 데 말이지. 그러니 흔적을 남겨야 했다. 옆에 머물렀던 사람들 기억들 추억들 감정들 울고 웃었던 그리고 잊혀가는 얼굴들… 그대들도 이 안에 존재한다고 남기고파 펜을 잡은 것이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저 먼저 시작했을 뿐이다. 자신의 기억을 각자의 방식으로 남기고 보관하는 것처럼 … 알아봐달라고, 내 방식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사랑을 찾아다닌다. 영원히 정체를 알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어색하다. 사랑이 친절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 같다. 아차 싶으면 달아날 것 같은 실체.. 그만큼 나는 둔감하고 회피성에 둘러져 있다. 사랑이 앞에 있으면 무장해제될 사람이 될 건 분명한데, 무엇이 나를 옥죄어 오는 건지 원. 좁혀진 미간이 영 펴지지 않는다.
작년엔 특별하게 마무리했다. 밖에서 사람을 많이 만났고, 성격도 드러낼 수 있을 만큼 들어낼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그럴 수 있었다. 좋게 봐주던 나쁘게 봐주던 항상 옆에 있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나는 참 복받았다.
나를 좋아해 주는 이성도 있었다. 인연이 되진 않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나니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약간은 기뻤다. “넌 계륵이야”라고 들었던 이십 대 초반에서 모순점을 발견했다지.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또 다른 인정을 받았다. 누군가의 취향일 될 수 있다는 자존감이 지켜졌다. 자꾸만 이런 인정에 목말라야 하는 게 속상하긴 하다. 어쩌겠는가. 그런 인정으로 인해 목을 축이는 사람인 걸…
덕분에 많은 것을 해냈다. 감정적으로 매번 지지만 매번 이겨냈다. 개인적인 목표도 이뤄냈다. 성장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해낼 때마다 생동감을 얻는다. 실상 안 보이는 미래에 검은색으로 칠 당하지만, '그게 어때서?' 하면서 잠든다. 누군가의 미래는 검은색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외치며 잠이 든다. 검은색이 좋다. 모든 색과 어울리기도 하고,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색이기에… 이런 포용성이 마침내 어른이 돼가고 있는 단계라며, 머리에 새긴다.
뜬금없이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뭐라도 해야 덜 생각할 것 같아 부질없는 짓을 한다. 하고 나면 기분전환은 되니까 뭐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 마음은 왜 이렇게 연약한지. 같이 일하는 과장님께서 나보고 내유외강이라고 한다. '겉으론 차가워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을 뜻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경우에 따라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유리 멘탈인 사람'이나 '허세를 잘 부리고 센 척을 하며 큰소리는 잘 치지만 정작 실속은 부실한 사람'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외유내강이 되고 싶다고 말했더니, 반대개념이 돌아왔다. 원래 성격상 부드러운 성격은 아닌 듯싶다. 성격이 불같으니, 아닌 건 콕 집어서 물어보고 확인해야 직성에 풀린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개척해가야 한다. 찾아내야 한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없으니,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아야 하며, 설령 부담스러워도 스스로 버텨야 하는 무게이기에 짊어질 줄 알아야 한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해결이 될까? 다른 건 다 확인하고 물어보면서 내 문제만은 회피하는 게 맞는 걸까? 그렇게 또 땅굴을 파고 들어갈 것인가? 매일? 매번? 평생? 자기합리화라는 착각 속에 들어갈 것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무섭다. 사람이 무섭다. 다가오는 사랑이 무섭다. 온기가 무섭다. 머물다가 간 자리가 .. 떠날 자리가, 여운이 두렵다. 곁에 머무는 행복보다 곁을 떠나는 두려움이 나를 가린다. 불안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무도 없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불안이 베개를 적신다. 왜 이런 모양인지. 참. 이제는 안쓰럽지도 않다. 그저 그런 불안감마저 없어질까 봐 두렵다. 살아있다는 증거. 그런 쓸데없는 감정도 흔들리는 인생이기에 가능하다며, 목놓아 울어버리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시작했을까.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내쉼에 하늘을 나는 상상.. 손에 감각이 몸의 반동을 통해 상상에 의존한다. 공기와의 마찰.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 내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