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쓰는 것에도 맞고, 안 맞는 게 있다. 상대방이 다가올 때, 어떤 의도가 먼저 보인다면 한 귀로 듣고, 흘리는 편이다. 무엇보다 초점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대답도 하기 전에 이미 얼굴에서 드러난다. 뻔히 보이는 수법으로 속기에는 더 이상 순진한 촌년이 아니다.
무엇을 하든 예외는 있는 법. 첫판부터 선을 긋는 사이가 있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흐린 선부터 애매하게 시작한다. 결과는 가는 사람은 아쉽고, 오는 사람은 회피하다 모든 걸 놓쳐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금이 그렇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지?’
뒤돌아 인간관계를 봤을 때, 나름 굵직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를 벗어나 그룹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게 신기했다. 한 명씩이지만 따로 만나는 경우도 더러 생겼다. 예전 같으면 하나하나 스케줄이고, 스트레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인들도 달라졌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스킬을 배웠는지 생각이 전환했다. 그들의 플랜 안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나 또한 그런 생각으로 그들을 마주 보고 있었으니.
반대로 처음부터 긴 사이로 발전할 것 같은 사람과는 잘 되지 않았다. 말하는 방식이 비슷하던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게 비슷하던가 … 공통점이 확연히 드러나면 스스럼없이 개인사도 얘기하게 된다. 역시나 활활 타오르는 열은 한 번에 태워지는 것. 그런 불일 수록 연기도 냄새도 심하다.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되던 일도 안된다는 걸 계속 잊는 중이다.
동아줄도 잡아봐야 금인지 동인지 썩었는지 아는 듯, 사람 사이에서도 겪어봐야 이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 나름 자부심 있던 사람 거르기 스킬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까지였다. 내가 그렇게 느끼면, 주변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숨겨진 매력을 찾아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MC 같은 사람과 마구잡이로 캐어내는 포클레인 같은 종류만 있을 뿐이다.
가만히 … 내가 어떤 사람인지 뒤돌아봤다. 슬프게도 후자에 가까웠다. 사람마다 특징이 있기에 별명이야 쉽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했냐 물으면 의도가 어쨌건 강제성이 다분해 나 또한 썩은 동아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유지되는 관계가 있다. 각자의 캐릭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이. 그들은 암묵적으로 타인 간의 배려가 몸에 밴다. 장난을 쳐도 미움이 아닌 애정이 배경에 있다는 것을 안다. 포인트는 상호이해한다는 것. 이상적인 네트워크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느 순간 인식하게 되고, 인식한 순간 나를 대입하며 마음을 쓰게 된다. ‘나였으면 이런 걸 싫어하고, 이런 걸 좋아하지.’, ‘나였으면 저렇게 하는 것보다 이런 행동이 더 좋다고 느꼈어.’, ‘나였으면 아무 말 없는 것보다 이유라도 말해주는 편이 나았으니, 대화를 해보도록 먼저 노력해 보자.’, ‘나였으면 ….’
그렇게 괜히 하는 행동이 늘어난다. 그 사람을 위해 대담하게 행동하거나, 갑자기 떠올라서 깜짝 이벤트를 만들기도 한다. 애써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굳이 만들어낸다. 나는 그걸 ‘마음을 쓴다’라며 인식하고 있었다. 곁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그렇다. 쌓은 추억이 많으면 더 그렇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어떻게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사람이 있는지’ 감사해하기도 한다. 언제나 혼자 다니던 나 아니었나? 때론 실수도 하지만, 단호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며 대화를 통해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조 들리는 마음에 하루하루가 길다. 다이어트도 체중 유지가 힘든 듯, 인간관계있어서도 똑같은 것 같다. 체중 관리는 이유가 뚜렷하다. 운동을 덜 했다던가, 식단을 지키지 못했다던가, 휴식을 가지지 못했다던가.. 몸은 이유가 드러난다. 사람은 다르다. 애초에 본인이 아니다. 상대가 있기에 입을 열지 않는 순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예상할 뿐이다.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도 확정을 낸다. 확신을 한다. 그렇게 오해가 사실화 된다.
언제나 그렇듯 예상조차 되지 않는 침묵이 있다. 이유라도 알면 속 시원하게 정리할 수 있겠다만, 꾹 닫은 입은 열 생각이 없다. 무인도에 표류한 기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윌슨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되려 상처를 받는다. ‘아니, 이렇게까지? 그간 다졌던 정은 무엇이며, 나눴던 얘기는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만 쌓인다. 하물며 상대방이 이기적이게 보여 연을 끊고 싶어진다. 그간 그를 우선위로 둔 것이 거절당한 게 억울하고 서러워서 억지로 남의 동굴에 손전등을 들고 쑤실 정도다.
‘아, 썩은 동아줄인가 보다.’
놔뒀던 대화는 잊힌 채, 버려지는 거구나. 쌓인 추억들 사이사이로 몇 번이고 엉덩방아를 찧고 있다. 매번 받는 상처와 다른 종류의 타격이다. 무언가 누적된 관계라면 누군가의 얼굴엔 쌓였던 피로가 티가 났다. 지루함, 당연함, 무신경함 … 맹목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사이는 원래부터 無였다. 그렇게 믿고 싶으니 믿는 것이다. 사회의 흐름대로 주변 사람 또한 MBTI에 손가락을 얹어 존중해 주기로 한 것이다. 우정을 착각한 것 일까?
평소처럼 무신경하려고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는 1 때문에 모든 게 삭막하다. 어딘가에 갇힌 느낌이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내 감정을 우선으로 둔다. 신경 쓰지 않는 척, 바쁜 삶을 살기도 해본다. ‘~척’은 절대 해결 방안이 아니다. 해결되지 않았다. 는 이유로 불필요한 행동이 잦아졌다. 튀어나오는 감정적 충동을 못 참고 있다. 연관되지 않는 사람한테 불똥을 튀고 있다.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나를 썩은 동아줄로 볼만한 액션을 취하고서는 뒤늦게 ‘아차…!’ 해버린다. 이마에 머리를 짚고, 글을 써봐도 저지른 행동에 평정심이 비틀거린다. ‘어쩜…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어떻게 매번 삐뚤어지는지….’ 속상한 마음이 오답을 내고 있다. 그렇지. 나는 이런 속내를 가진 사람이었지. 노력을 끊으면 이리도 자극적인 사람이었지. 사실상, 혼자 벗어나지 못하니 마주 앉은 이들에게 알아달라고 떼쓰고 있던 것이다. 개념 있는 인맥인 척 군 걸 알아달라며 억지 부리고 있다. 아양 부리고 나면 아이스크림이 돌아올 줄 알았다.
… 내게 그런 사람이 남아있던가?
문제를 붙들고 손쉽게 놓칠 못하니 갖가지 생각에 중심을 잃는다. 그간 쏟았던 진심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진실로 진심은 함부로 주면 안 된다고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뻔한 글에 하품을 하지만, 뻔한 말에 금방 상처를 받는다. 남의 말보다 나의 일이 더 중요하고 아픈 듯..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며 뚜렷한 선을 문지를 것 같다. 어지러이 놓여있는 수용적 태도는 정리될 줄 모른다.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다. 는 오만 때문에 관계에서 루저가 된다. 땅따먹기처럼 분명하게 그었어야 했나 보다. 가까워졌다고 모든 말에 진심을 더하면 안 되는구나. 돌멩이를 줍기 전에 내가 주울 수 있는 거리인지 계산했어야 했구나…
안타깝게도 놓인 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에 먼저 허리가 굽힌다. 제 승을 못 이겨놓고 넘어져 버리지. 그래놓곤 깍두기에게 주절주절하는 신세라니… 맞다. 나 깍두기였지? 갈팡질팡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사람들이 지켜보자고 하는 사람이었지. 나도 ‘재기’를 당하는 쪽이었지. 이렇게 생각하니 미련도 없어지겠다. 잊을 수 있겠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 순간에도 손은 핸드폰을 향한다. 문질러 둔 선에게 물어본다. “뭐가 잘못인 거야?” 의문만 생긴다.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내 단점을 숨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제 발에 지가 넘어진 꼴이라니. 믿고 싶지 않아 가위로 끊긴 줄을 구질구질하게 잡고있다. 도대체 뭘 바래서?
이미 끝난 관계에서 빨간 실이 있을 거라는 줄을 잡고 있다. 제발 한 마디라도 하고 끊어달라고, 그게 서로 간의 배려 아니겠냐고, 우리는 그걸 알고 있지 않냐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제어할 수 없는 충동을 알아차리자마자 핸드폰을 닫아버렸다.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다른 사람을 안 만나기로 했다. 점점 조여오는 물음표에 공벌레가 된 채, 꿈을 꾸기로 했다. 무의식이 지배하게 빌었다. 현실에 있는 내가 더 이상은 썩은 채로 있고 싶지 않으니, 모든 사진을 정리하고 순백의 벽을 바라보며 잠에 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