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시 쓰는 조원효라고 합니다. 망원동에 거주하고 있어요.
Q. 근황이 궁금합니다.
EPL에 푹 빠져있습니다. 바둑 - 야구 - 축구로 관심사가 조금씩 바뀌어 왔는데요. 복잡한 규칙이나 전술 - 조직력을 통하여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조금 나이브하게 말하자면 시에서 문장을 조직하는 방식과 축구에서 스쿼드를 통하여 팀의 전술을 이행하는 방식은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어떤 직조와 짜임새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Q. 데일리 루틴이 있을까요? 사이드 잡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데일리 루틴은 대학교 - 집 - 친구들 만나기 - 헬스장 - 야간 러닝 등이 전부입니다. 평일에는 틈틈이 좋은 카페에서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귀한 시간입니다. 사이드 잡으로는 <진부책방>이라는 망원과 연남 사이에 카페 겸 책방에서 주말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문학 / 철학서들에 둘러싸여 커피를 타는 일은 꽤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Q. 등단하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지금은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
2017년 <현대시>로 등단하였는데요. 당시에는 어린 나이에 등단한 것이 불안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았고, 지적인 것에 대한 갈망과 허영이 많았습니다. 여러 세미나를 다녔고 어떤 문학 작품과 철학서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러한 지적 허영이 긍정적인 의미의 기폭제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는 밸런스를 맞추며 글을 쓰는 방식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홍대 24시 카페에 가서 밤새 끙끙거리는 방식이 아닌, 다른 건강한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Q. 이수명 시인과 이상우 소설가를 정말 좋아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둘은 여전히 저에게 중요한 작가입니다. 한유주 소설가 / 김유림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우는 저에게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이고 이수명은 저에게 최고의 기호학자입니다. 한유주 역시 한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한유주의 『얼음의 책』 발간 년도가 2009년이라는 것은 놀랍습니다. 김유림 또한 최근에 가장 애정하는 시인이기도 하구요. 제가 열거한 작가들의 공통점은 계속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갱신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작가들의 자기 갱신은 저에게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불어넣습니다.
Q. 문학이 모든 예술과 철학에 선행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느 정도 동의가 되지만 관점의 차이라고 느낍니다. 하마쿠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이나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 같은 작품들은 어떤 면에서 문학보다 문학적입니다. 실제로 두 작품의 감독들은 자신들이 문학에게 받은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구요. 그럼 문학적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은유적이거나 어렵다고만 해서 문학적인 것은 아닐 겁니다. 문학적이다, 라는 말도 조금 웃기기도 하구요. 어찌됐건 문학이라는 장르는 미술 - 영화 - 철학과 분명한 영향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질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 』 에서 베이컨의 회화를 철학자의 시선으로 하나하나 뜯어보고 해석 - 해체합니다. 저는 이 책을 정말 사랑하는데요. 형태학 - 기호학은 정말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 회화의 구도를 뜯어보는 일은 저에게 어떤 종류의 쾌감을 줍니다. 제 생각에 문학은 타 장르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Q. 한 인터뷰에서 '내적 긴장을 잃지 않는 작가가 되고싶다'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한 인간으로서 그러한 직업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나요?
네, 그래서 지금은 마냥 놀고 있습니다.
Q. 버겁다면, 이를 해소하는 본인만의 방법도 있나요?
친구들을 만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EPL을 보거나 서울의 곳곳을 산책하거나 카페에서 혼자 독서를 하는 게 해소 방법인 것 같아요. 이상하게 넷플릭스나 왓차는 구독을 해도 손이 잘 가지 않더군요. 알고리즘은 때로 피곤합니다.
Q 유튜브에서 <도넛 시티> 관련 인터뷰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때처럼 헬스를 열심히 하시나요?
지금은 주 2회 - 3회정도 가는 것 같습니다.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서 헬스든 러닝이든 규칙적으로 하려고 해요.
Q. 운동은 슬픔을 잊게 한다고들 합니다. 한편으로는 감정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시대가 된 것 같기도 해요. 슬픔을 그대로 느끼는 편인가요, 잊는 편인가요, 아니면 글로 써내는 편인가요.
슬픔이 오면 자꾸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재작년에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어요. 저는 뭐든 잘 잊는 스타일이어서요. 언젠가부터 일기를 쓰지 않는데요. 일기를 쓰면 자꾸 뭔가를 성찰하려고 하더라구요. 대신 일기에 쓸 법한 이야기를 시에다 쓰자, 라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슬픔은 문학에서만 경험하자, 그런 주의입니다.
Q. 지금 사랑하는 사람(것)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언제나 고마워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제가 있는 것 같네요.
Q.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단기적인, 장기적인 개인적인 목표도 궁금합니다.
일단 올해 안에 첫 시집을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구요. 저의 문체나 스타일을 명확히 만들고 그것을 또 다르게 변주할 수 있을 때 다음 챕터에 대한 계획과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문학을 생각할 때 제가 사랑하는 선배들 - 죽은 작가들을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들에게서 내가 어떤 것을 수혈 받았고 어떤 것을 변주할 수 있고 어떤 걸 다르게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첫 시집을 내고 시를 더 안쓰고 싶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해외 문학은 계속 읽을 것 같네요. 왜냐하면 문학 '팬'으로서의 열렬한 에고는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