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의미의 축제>는 기억나는 부분이 <인간의 굴레에서>에서 느낀 것과 다른게 전체적인 내용과 상관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인상 깊었던 건, 한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빛들 사이로 가라앉는 먼지, 깃털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형태. 여러 번 읽고, 여러 번 공상에 잠겼다.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이라 일순간 멈춤 상태에서 잦은 공상을 했었다. 이런 경험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곧잘 감성적으로 변했기에 지극히 나에게 일어나는 부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 책에서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을 찾을 때마다 알이 깨졌던 것 같다.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스토리 상 비중이 크지 않아도 막무가내로 scene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작가들을 탐닉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고 여백에 모든 느낌표를 쏟아냈다. 글을 쓸 땐 손가락의 리듬이, 컨버스에는 펜과 붓의 속도를 맞췄다.
실상 나는 현실도피 중이었을 수도 있다. 가상 속 세계에서 돌아오질 못할 답변만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과 가까워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아졌다. 대화를 할 때 주제가 바뀌고, 내 의견이 남들과 엇나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모조리 뱉었다. 영상을 틀어 춤추는 사람의 근육을 보았고, 글 속의 축제를 찾았으며, 그림 속의 춤을 찾았다. 부가 설명 없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감성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새로움에 환호했다.
그러니 내게 있어 '움직인다'라는 것 자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언자이자 조력자다.
삶이 ‘불균형하다’고 느낄 때, 몸을 움직여 땀을 빼고 동작을 맞추며 음악을 듣고 하나의 영상을 만드는 것.
자리가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의자에 앉아 흔들리는 작은 것들을 보며 진정을 찾는다는 것.
자아가 ‘불안정하다’고 느낄 때, 정지된 춤을 보며 그간 쌓아논 경험을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내는 것.
이렇게 짜 맞춘 것처럼 녹아있다는 건 놀랍지 않다. 오히려 힘든 감정이 진정된다는 게 놀랄 뿐이다.
그러니 댄스 바람이 분 이 시점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분명히 옛날부터 해왔던 방식이고, 하물며 즐기는 부분이다. 누군가 함께 하는 걸 기꺼이 응답하고, 풀었던 순간이었다. 아마 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을 제때 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질감이 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런 현상을 즐기기로 했다. 전문 댄서도 아니면서 춤에 대해 진지한 꼴이 웃길 정도다. 그 정도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저 발을 떼고 박자를 맞추며 내가 원하는 곳에 힘을 조절하는 긴장감에 희열을 느낀다. 그러니 비관적인 생각보다 그 자체를 바라보려고 노력 중이다.
한 번만 더 움직이면 될 것 같은 느낌, 몸을 어떻게 써야 동작이 멋있어지는지 그리고 노래와 춤으로 모든 사람들이 연결됐음을 느꼈을 땐, 이상하리만큼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처음 있었던 일 같이 새로이 느껴진달까. 아마 이런 변화는 다시금 사람들의 인생관에 녹아들 것이다. 마치 위로를 받으러 만들어낸 공상에 '무언가'를 좇았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