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강녕하셨는지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다들 감기 걸리지들 마시고 잘 지내고 계셨으면 해요. 갑자기 이렇게 추워지니까 가을이 없어진 것 같아요. 단풍같은 걸 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어제는 집에 모기가 엄청 많더라고요. 갑자기 추우니까 밖에 있으면 얼어죽을 것 같아서 피신 온 것 같은데, 전기파리채로 그렇게 잔인한 결말을 맞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겠죠? 아주 잔인하게요. 내 피를 노린다면 자비는 없습니다. 똑똑하게 기억시켜 줬어요.
내 피를 내줘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건 뭐가 있을까요? 살생을 하면 안되는 스님들은 모기한테 그럴 것이고. 롯O시네마 티켓을 꼭 받아야지 마음먹고 찾아간 헌혈의 집이 있을 것이고. 하나가 더 있는 것 같아요. '내 피같은' 것들, 시간이건 돈이건 무엇이건 다 내주어도 좋을 것 같은, 바로 사랑이예요.
"한 번에 되는 것은 사랑밖에 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무근본 사장님)이 한 말입니다. 공부도, 운동도, 음악도, 모두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랑만큼은 그 어떤 연습도 없이 한 번에 가능했어요. 한 번에 서로가 눈에 들어오고, 한 번에 설렜고, 한 번에 웃었고 한 번에 취향이 통하고 대화가 통해서 같은 것을 생각했어요. 그건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을 생각하면 그 무엇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내일 써야하는 글도, 아침에 하기로 한 운동도 피아노 치는 것도, 친구랑 했던 약속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는 현재에만 존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현재에만 존재해요. 앞도 뒤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애랑은 다른 개념이예요. 사랑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집니다.
사라지지 않는 사랑을 오래도록 하고 있다고요? 거짓말일겁니다. 사랑은 정말 빠르게 사라져요. 모든 걸 주어도 좋을 것 같이 예쁘던 살결과 웃음이 익숙해지고, 그 전까지는 절대 보이지 않던 점과 주름이 보입니다. 화장이 지워진 낯을 보고, 벗은 몸의 주름잡힌 살과 정리되지 않은 털을 보고, 정제되지 않고 무심코 튀어나온 언어를 봅니다. 보인다는 것은 사랑이 식었다는 것입니다. '괜찮다'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괜찮았나요? 처음에 사랑을 시작할 때 '괜찮아'라고 말했나요? '좀더 참아보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최선이었던 사람이 차선, 차악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갈구하는 걸요. 사랑이 없어도, 사랑이 있어도. 객관적으로 얼마나 사랑받는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받고 있어도 더 받고 싶은 거니까요. 채워지지 않는 이 연기같은 '사랑'은, 그러면 과연 모든 것의 동력일까요? 연애를 이어가게 해줄까요?
프랑스 문학가 '아니 에르노'씨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출판사들은 앞다퉈 판권을 계약하려고 했어요. 한국에서는 딱 한 출판사만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윤씨가 운영하는 '레모'라는 1인 출판사였어요. 윤씨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사랑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매일 번역을 하고, 메일을 돌리고, 출판을 하고. 습관처럼 일에 매진했던 걸 수도 있어요. 노벨 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연락한 출판사들보다, 어쩌면 자주 안부를 주고 받던 친구같은 번역가에게 더 마음이 가는 법이니까요. 사랑은 그저 시작일 뿐인 게 아닐까요. 사랑보다는 동경이, 동경보다는 우정이, 결국 감정이 아니라 습관이 더 오래 가는 것 같아요.
사랑에 대한 무의미한 방백(...)을 잠시 각설하고요. 아니 에르노 이야기를 왜 했냐면, 그의 책 중 하나가 '사랑'에 관한 책 중 가장 감명 깊었기 때문이예요. 그 책은 바로 <사진의 용도> 인데요. 대학 도서관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들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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