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헤진 게 요즘 말로 '힙'한 카페들이 있는 거리보다 백 번 천 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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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빛교회 김치 젓갈 바자회, 2022.10.17일부터 10.19일까지
글. 사진. 정태홍
안녕하세요.
이번 한 주는 바쁘게 보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갑자기 파리 행 티켓을 예매해버리고, 이제 진짜로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준비를 하느라고요. 평소 <프레데릭 말>이라는 향수 브랜드를 좋아하는데요. 해외 PR 담당자와 연락을 나누다가 그 브랜드에서 가장 향수를 많이 만든 도미니크 로피옹 (Dominique Ropion)이라는 사람을 인터뷰 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도미니크 로피옹에 대해 짧게 설명드리자면, '카날 플라워', '베티베 엑스트라 오디네르', 그리고 유아인 향수로 유명한 '제라늄 뿌르 무슈' 등 히트작을 많이 만든 조향사입니다. 그가 만든 향 중 국내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일명 포오레)' 도 있지요. 어찌됐건 프레데릭 말(기업) 측에서, 프레데릭 말(대표) 본인도 언제든 만나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마침 브래드 피트와 아니 에르노 섭외도 계속 안되고 있던 찰나에 고민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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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a Lady: Once Upon a Time Was a Woman
로피옹 경이 소속된 IFF(International Flavors Et Fragrances)와 미팅 약속을 잡는 동안에도 반신반의 했습니다. 가서 머물 곳이며 통역도 없고. 일단 "동시통역도 준비해 보겠습니다"하고 질러버렸는데, 사실은 막막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티켓을 결제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잔고를 보고 나서입니다. '이대로 조금씩 망하느니 빨리 망하자'라고 생각했어요. 앗. 쓰면서 갑자기 생각났는데요. 작년 이맘때쯤 비트코인 투자로 고배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럴 바에는 그냥~' 하면서 모든 돈을 테조스 선물에다가 몰빵했는데요. 하룻밤 사이에 300만원을 청산당한 기억이 있네요.
가을은 천고마비가 아니라 소비의 계절이었나요?
그래가지고 티켓은 끊어졌고, 저는 난민이 되느냐 화려하게 귀환하느냐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이 난관 속에서 여러분들께 좋은 소식과 안좋은 소식을 각각 하나씩 전해드려야 할 것 같네요.
먼저 안좋은 소식입니다. 튤립매거진은 내일 모레 발송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종료합니다. 이제까지 사랑해주셔서, 혹은 안 사랑하는데 메일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다음은 좋은 소식이예요. 저희는 2022년 10월 25일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인터뷰, 칼럼, 에세이 등 좀 더 체계화되고, 내용이 풍부해진 글을 묶어 매주 보내드립니다. 이제부터 글 값을 받습니다. 한 달에 5천원이예요.
저에게만 좋은 소식 아니냐고요? 천만에요. 커피 한 잔 값에 프랑스와 도쿄를 다녀오고. 전세계 명사들을 만나볼 수 있는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소식이지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내일 모레 보내드릴 글에서 못다한 말을 전할게요. 끝까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제 저는 전단지를 돌리러 가야 한답니다. 날씨가 많이 차요. 갑자기 추워졌기 때문에 단단히 챙겨 입고 나가야겠습니다.
정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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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이수 빛교회에서 바자회가 열렸다. 이수 빛교회는 정류장 이름으로 있을 만큼 꽤나 오래된 교회인 것 같았는데, 막상 찾아보니 그리 오래된 건 아니다. 2014년 문을 열었다. 건물이 으리으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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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까지 찾아가서 반찬을 사오는 일은 자취 초반에 많이 했었다. 요즘에는 시장에 잘 가지 않는다. 끼니는 대충 때우고 냉동식품을 먹는다. 식비가 많이 나와서 어쩌나 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다. 꼭 취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진짜 필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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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겉절이, 파김치, 알타리, 오이소박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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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절이를 한 입 먹어보자 마자 사고 싶어졌다. 혼자 살고 있으니까 반만 사고 싶다고 했다. 사실은 둘이 사는데, 할머니들 넉살 좋은 웃음 때문에 만원을 홀라당 내버릴 것만 같았다. 김치 말고 다른 것도 사려고 한다고 하며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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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테이블에서는 좀 더 젊은 아가씨랑 할머니 한 분이 반찬과 돼지고기를 팔고 있었다. 돼지고기를 사면 왠지 백반집에서 7천원 내고 제육볶음 먹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서 못 샀다. 젓갈도 땡겼는데, 그렇게까지 자주는 안 먹을 것 같아서. 그야말로 시장통이다. 멸치랑 오징어채, 콩자반을 담았다. 바자회는 이런 맛이다. 이 지역에서 반찬이 4천원 하면 시장보다 싸거나 비슷한 건데, 교회는 안 다니지만 왠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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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늘부터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역으로 치면 7호선 내방역이 가깝고, 버스를 타면 이수 빛교회 정류장이 있다. 방배 카페골목과 인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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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는 바자회, 벼룩시장 따위의 것들을 좋아한다. 예전 사무실이 장승배기에 있을 때는 출퇴근 길에 시장통을 천천히 지나갔다. 낡고 헤진 게 요즘 말로 '힙'한 카페들이 있는 거리보다 백 번 천 번 낫다. '을지로 감성'으로 둔갑한 카페들 말고 진짜로 낡은 것이면 몰라도. 예를 들면 <커피한약방>이나 <을지다방>처럼.
이런 곳들은 배고픈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힘이 있다. 어렸을 때 '아나바다 운동' 기억하는가? 초등학교 때 안 쓰는 물건들을 다 가져와서 나누는 행사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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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9년 일자의 '백제뉴스'에서 가져왔다. 내가 졸업한 후 1-2년 안에 찍힌 사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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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연락해서 진짜 우리 때 바자회를 찾았다. 졸업앨범에 있던 사진이다. 저 교복이 기억난다. 우리 학교는 다른 초등학생들이 다 사복입을 때 혼자만 교복을 입게 했던 학교였다. 그래서인지 명문이라고 소문이 나서 학부모들이 이 학교에 보내고 싶어들 했다. 뺑뺑이여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운좋게도 나와 동생 모두 이 학교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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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건 자기가 직접 만든 걸 파는 바자회, 입던 옷을 처분하는 벼룩시장. 둘 다 영리 목적이 아니다. '나누어 준다'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많은 위대한 것들이 '나누어 준다'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고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하고. 일전에 언급했던 크리스토 자바체프도 작품을 모두가 볼 수 있게 관람권을 팔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좋은 것을 모두가 볼 수 있게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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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 오늘 쓰고 있는 이 칼럼이 마지막 칼럼이다. 이제 글을 아예 안쓰겠다는 건 아니다. 유료화를 하기로 했다. 이제까지 써진 칼럼들과 인터뷰는 모두 그대로 볼 수 있다. 다음에 올라가는 칼럼부터는 월 구독료를 받고 메일로 보내질 예정이다. 홈페이지에는 이제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위로하고 나눈다는 것. 글과 사진으로도 가능하다.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사람을 동경하며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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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버전 중에서 고민했다. 최종은 3번째 것으로 결정되었다. 만들어놓고 보니 내용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다음 호 (만들 여력이 된다면)의 포스터는 조금 더 꼼꼼하게 만들어 봐야겠다.
유료화의 이유에 대해서는 긴 말을 하지 않겠다. 돈이 없어서다. 대신 더 풍부한 내용으로 찾아뵙겠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니.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에서 참고하길. 돌아올 항공권이 없어 해외 난민이 되지 않는다면, 한국에 오면 튤립 바자회를 열도록 하겠다.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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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말의 전설적인 조향사 도미니크 로피옹,
POPEYE BRUTUS 창립멤버 츠즈키 쿄이치입니다.
(브래드 피트, 뉴진스 등 섭외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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